
엽서에 그려진 당시의 아사쿠사 공원 풍경(다이토구립 시타마치 풍속자료관 소장)
현재의 아사쿠사의 구획은 메이지 6년(1873)의 태정관 포고로 광대한 센소지 경내가 아사쿠사 공원으로 바뀌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메이지 17년(1884)에 다시 7구로 나뉘면서 지금에 이릅니다. 센소지의 서북 일대는 에도 시대에 오쿠야마라고 불리며 구경거리와 거리 공연으로 번화했던 지역이었는데, 메이지 5년(1872)에는 유희장이 설치되면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유원지로 불리는 아사쿠사 하나야시키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사쿠사 연예홀과 동양관이 위치한 아사쿠사 공원 6구(아사쿠사 6구)는 지금의 국제 거리에서 쇼와 26년(1951)에 매립된 효탄 연못까지 이르는 남북으로 걸친 흥행의 거리였습니다. (하단에 계속)

엽서에 그려진 당시의 아사쿠사 6구 일대의 활기찬 모습(다이토구립 시타마치 풍속자료관 소장)
오른쪽에 료운카쿠(통칭 아사쿠사 십이층)가 보입니다. 다이쇼 12년(1923) 관동대지진 전의 풍경으로 여겨집니다.
쇼와 39년(1964)의 도쿄 올림픽시기부터 TV가 보급됨에 따라, 아사쿠사 6구의 활기는 점차 쇠퇴 해갔습니다. 다이쇼 시대의 아사쿠사 오페라, 쇼와 시대의 경연극이나 검극 등의 흥행으로 많았던 영화관이나 극장, 공연장이 잇따라 폐관되면서 아사쿠사 6구는 점차 활기를 잃어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사쿠사 연예홀, 그리고 동양관은 그 당시의 연예의 중심지로서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존의 단골 관객뿐만 아니라, 신진 연예인의 만담이나 콩트 등을 보기 위해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해외 관광객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에서 일본의 옛 문화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아사쿠사 6구 일대에서는 당시의 활기를 되찾기 위한 시도나 재개발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사쿠사를 방문하는 관광객도 아사쿠사 6구 근처까지 발을 넓히면서 그 활기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아사쿠사 6구는 다시금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엽서에 그려진 당시의 아사쿠사 공원 (다이토구립 시타마치 풍속자료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