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토로 퇴각하기 전 2개월 동안 칩거했던 ‘아오이노 마’, 당시의 광경이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에도바쿠후 제15대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사진 기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요시노부의 초상이 호젓이 걸려 있습니다.

에도바쿠후가 1867년에 정권을 천황에게 반환(대정봉환)하고 요시노부는 정이대장군직을 반납한 후, 이듬해인 1868년에 이곳 간에이지 사원 ‘아오이노 마’에 칩거했습니다. 아오이노마의 카모이(문 위에 가로 댄 나무)에는 2개월 동안의 체제가 새겨져 있습니다.

당시의 초상 및 사진과 함께 생전에 애용했던 그의 손때 묻은 물건도 남아 있습니다. 요시노부는 이곳에 머물렀던 동안 대정봉환, 그리고 메이지 시대의 도래를 겪으며 어떤 감개에 잠겼을까요.

아오이노마의 비품이라 되어 있는 도에이산 전도에는 ‘경내 삼십만천팔백칠십여 평, 방생지 육만 평’1840년 무렵의 그림이라고 되어 있어, 당시의 규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오이노마에는 요시노부가 머물렀을 당시와 변함없이, 툇마루를 통해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간에이지 야나카 레이엔 묘지 내에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묘소가 있습니다.
역사의 흔적은 짙은 초록빛 숲 안에 있었습니다.
1866년에 제15대 장군직을 물려받은 요시노부는 이듬해에 대정봉환하고 우에노 간에이지에 잠시 칩거한 후, 미토를 거쳐 오랫동안 슨푸(현재 시즈오카현)에 은둔했습니다. 이후 동경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만 1913년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묘는 둥근 돌지붕 형태로 5,600제곱미터 남짓한 묘역의 다소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창비의 후방 왼쪽에 보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츠나 영묘 칙액문 (중요 문화재) 간에이지 레이엔
제3대 장군 이에미츠에 이어, 겨우 11살의 나이로 제4대 장군의 자리에 오른 이에츠나는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 삶을 마감했습니다.

도쿠가와 츠나요시 영묘 칙액문 (중요 문화재) 간에이지 레이엔
‘쇼루이 아와레미노 레이’로 유명한 제5대 장군 츠나요시는 이에츠나에 이어 장군이 되었습니다. 츠나요시는 취임 후 선정을 베풀어 ‘텐와노 치’라 칭송되었습니다.

에도바쿠후 제15대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사진 기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요시노부의 초상이 호젓이 걸려 있습니다.

간에이지 야나카 레이엔 묘지 내에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묘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