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 케이타로(1868-1940)
사토 케이타로는 규슈 와카마츠(현 기타큐슈시)를 거점으로 활동한 석탄상으로서 도쿄부 미술관 설립 시에 건설비 100만 엔을 기부하고 이후에도 미술관의 발전에 이바지하여 ‘도쿄부 미술관의 창시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공적으로 미국에서 교육과 문화사업에 공헌한 ‘철강왕'으로 알려진 앤드류 카네기(1835-1919)에 빗대어 ‘일본의 카네기’라고도 불립니다. 도쿄도 미술관 안에는 이 업적에 경의를 표하여 조소가 아사쿠라 후미오 작 '사토 케이타로상' 과 함께 사토 케이타로 기념 아트라운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오카다 신이치로 설계 도쿄부 미술관(도쿄도 미술관 구관)
오카다 신이치로는 쿠로다 기념관(우에노 공원), 도쿄 미술학교(현 도쿄 예술대학) 진열관 등의 미술 관련 시설도 설계하였습니다.
‘도쿄도 미술관의 창시자’로 불리는 사토 케이타로는 상설 전시공간이 갖춰진 소위 아트뮤지움의 설립을 희망했지만, 당시 미술계의 요청에 따라 본관(구관)은 미술전 회장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현재의 도쿄도 미술관(신관)에서도 3000여 점의 소장 작품을 상설 전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들 소장 작품의 대부분은 후에 설립된 도쿄도 현대미술관(도쿄도 고토구 미요시 4쵸메)으로 이관되었습니다. (하단에 계속)

도쿄부 미술관 설계도(1925년경)
도쿄부 미술관은 1926년에 개관했으며, 첫 전시회는 도쿄 미술학교(현 도쿄 예술대학) 교장 마사키 나오히코가 중심이 된 기획전 ‘쇼토쿠타이시 봉찬 미술전'이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화가, 서양화가, 조각가, 공예가 등의 신작 10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이후에 마사키 나오히코 등의 노력으로, 개관 20년을 맞이할 무렵에는 700회가 넘는 전시회를 개최하여 미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누마타 이치가 작 「마사키 나오히코 상」
도쿄 미술학교(현 도쿄 예술대학)의 제5대 교장을 지낸 마사키 나오히코는 도쿄부 미술관 고문으로서 설립에 힘썼으며 그 공적으로 ‘도쿄부 미술관을 기른 부모’라고도 불립니다. 그의 소조상은 도쿄 예술대학 마사키 기념관 중정에 전시되어있습니다.

공모단체 베스트 셀렉션 미술 2012
도쿄도 미술관에서는 공모전 외에 오하라 컬렉션(오하라 마고사부로), 마츠카타 컬렉션(마츠카타 코지로)의 전시회 등이 잇달아 개최되었습니다. 공모전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폐허 속에서 문화를 갈망하던 시민들에게도 지지를 받아 1946년, 1947년에 일찌감치 전시회가 재개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공모전이 개최되고 미의 전당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트라운지에는 구관, 신관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토 케이타로(1868-1940)
사토 케이타로는 규슈 와카마츠(현 기타큐슈시)를 거점으로 활동한 석탄상으로서 도쿄부 미술관 설립 시에 건설비 100만 엔을 기부하고 이후에도 미술관의 발전에 이바지하여 ‘도쿄부 미술관의 창시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공적으로 미국에서 교육과 문화사업에 공헌한 ‘철강왕'으로 알려진 앤드류 카네기(1835-1919)에 빗대어 ‘일본의 카네기’라고도 불립니다. 도쿄도 미술관 안에는 이 업적에 경의를 표하여 조소가 아사쿠라 후미오 작 '사토 케이타로상' 과 함께 사토 케이타로 기념 아트라운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트라운지에는 구관, 신관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