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쿠류코센 (다이토구 이케노하타 3쵸메) (다이토구 사진연맹 촬영)
에도의 공중욕탕의 기원은 에도 시대 후기의 ‘유노야’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853년에 쓰인 에도 시대의 풍속을 묘사한 기타가와 모리사다의 「모리사다만고」에 의하면, 에도의 대부분의 목욕탕은 남녀 유별, 카미카타(현재의 오사카, 교토 지역을 지칭)에서는 혼욕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입욕습관을 더 거슬러올라가면, 6세기에 도래하여 쇼토쿠 태자의 도입 정책으로 널리 보급된 불교에서 몸을 정화하기 위한 의식이었던 ‘목욕’에 기원한다고도 합니다. 이에 사원 칠당 가람 중 하나는 욕당으로 되어있습니다. 사원에서의 목욕은 전국에 코쿠분지 건립을 추진했던 광명황후(710-760)가 진흥한 불교 포교에 따른 자선 사업의 일환으로서 입욕을 제공한 ‘세요쿠’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향수를 느끼게 하는 목욕탕의 건물형식은 1299년의 「일편상인회전」(칸키코지 소장)에 그려진 목욕 장면을 보더라도 사원의 가람을 본뜬 ‘사찰형식'에서 시작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하단에 계속)

우메노유 (다이토구 구라마에 4쵸메)

우메노유 (다이토구 구라마에 4쵸메)
사찰을 본뜬 형식은 외관만이 아니라 실내도 높은 격자 모양으로 짜인 격천정과 높은 창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목욕탕 대부분은 메이지 이후에 창업된 것으로, 건물도 대부분은 쇼와 초기에 지어졌다고 합니다만, 에도가와구에 있는 ‘아케보노유’는 1773년에 창업했고, 츄오구 긴자 콘파루거리에 위치한 ‘콘파루노유’는 분큐 년간(1861-1863)에 창업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콘파루의 유래는 에도 시대에 이 곳에 콘파루류 쿄겐의 당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히노데유 (미노와 1쵸메) (다이토구 사진연맹 촬영)

츠루노유 (아사쿠사바시 5쵸메) (다이토구 사진연맹 촬영)

츠루노유 (히가시우에노 5쵸메) (다이토구 사진연맹 촬영)

미스지노유 (미스지 2쵸메) (다이토구 사진연맹 촬영)

우메노유 목욕탕의 후지산 (구라마에 4쵸메)

미스지유 목욕탕의 후지산 (미스지 2쵸메) (다이토구 사진연맹 촬영)

히구치이치요 기념관 근처에 있는 이치요센 (류센 3쵸메)

이치요센에는 가마청소를 위한 거대한 빗자루가 걸려있었습니다.

우메노유 목욕탕의 후지산 (구라마에 4쵸메)

미스지유 목욕탕의 후지산 (미스지 2쵸메) (다이토구 사진연맹 촬영)

히구치이치요 기념관 근처에 있는 이치요센 (류센 3쵸메)

이치요센에는 가마청소를 위한 거대한 빗자루가 걸려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