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on February 16, 2015
Published on February 16, 2015

새로운 시대를 향한 태동과 진통이 이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기요미즈 관음당내에 걸려있는 우에노 전쟁을 그린 액자

쇼기타이의 무덤 (다이토구 유형문화재)

 에도 시대에 장대한 부지를 보유하던 도에이잔 간에이지는 막부 말기에 일어난 보신 전쟁 때 경내에서 일어난 쇼기타이와 신정부군 간의 우에노 전쟁으로 가람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또한 대정봉환 이후에 세워진 메이지 정부에 의해 많은 부지가 몰수되었지만, 메이지 12년(1879)에 간에이지의 부흥이 인정되어 가와고에 기타인에서 본지당이 옮겨지고 야마우치 본지당의 용재도 더해져 근본중당으로서 재건되었습니다. 현재는 3만평 부지에 근본중당이 있는 본사 이외에, 소실을 피한 기요미즈 관음당, 린노지 몬제키 고혼보오모테몬, 도쿠가와 장군 영묘 칙액문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기요미즈 관음당은 에도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몇 안 되는 본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단에 계속)


우에노 전쟁을 그린 액자(왼쪽)와 포탄 (오른쪽)
당시 사가 번이 보유하던 암스트롱 포와 관련된 포탄이 아닐까 추측되고 있습니다. 현재 사가 대학 등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에도 막부 15대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대정봉환 이후에 도바 후시미 전투에 패배하고 에도로 돌아왔습니다. 동정군(신정부군)과 귀족세력 간에 도쿠가와 가문의 처분이 논의되었는데, 요시노부의 히토츠바시 가문 시절의 측근들은 요시노부를 구하기 위해 게이오 4년(1868) 2월에 동맹을 결성 후 쇼기타이라 칭하고 우에노노야마(도에이잔 간에이지)에서 농성했습니다. 게이오 4년 5월 15일 아침, 오무라 마스지로가 지휘하는 동정군은 우에노를 총공격했습니다.
 쇼기타이 대원들의 시신은 미노와 엔츠지(현 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의 주지인 부츠마 등에 의해 현지에서 다비(화장)되었습니다. 현재 우에노 공원에 남아있는 쇼기타이 묘 앞에 놓여진 작은 비석은 메이지 2년(1869))에 간에이지 자원인 간쇼인과 고코쿠인의 주지가 몰래 인근 땅속에 묻어 둔 것을 후대에 파낸 것입니다. 큰 비석은 메이지 14년(1881)에 쇼기타이 대원이던 오가와 오키사토(스기타) 등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쇼기타이는 메이지 정부에 대한 반란군이었기 때문에 정부를 의식하여 쇼기타이의 문자는 새겨져 있지 않지만 구 막부관료인 야마오카 텟슈의 필체로 ‘전사지묘’의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1990년에 다이토구 유형문화재로 구민 문화재 대장에 등재되었습니다.


쇼기타이의 무덤 (다이토구 유형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