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on March 12, 2014
Published on March 12, 2014
센소지를 찾아서

센소지와 그 주변은 아사쿠사의 변모를 전하는 역사의 보고입니다.


아사쿠사 신사
아사쿠사 신사는 센소지의 본존을 감득한 하지노 나카토모, 히노쿠마 하마나리, 다케나리 세 명을 모신 유래로 ‘산쟈(삼사)’로 불리며, 아사쿠사를 진호하는 신입니다. 현재의 신전은 게이안 2년(1649), 도쿠가와 삼대 장군 이에미츠의 기진에 의한 것으로, 혼덴(본전), 헤이덴(폐전), 하이덴(배전)이 복도로 연결된 ‘권현 형식’으로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사쿠사 신사
아사쿠사 신사는 센소지의 본존을 감득한 하지노 나카토모, 히노쿠마 하마나리, 다케나리 세 명을 모신 유래로 ‘산쟈(삼사)’로 불리며, 아사쿠사를 진호하는 신입니다. 현재의 신전은 게이안 2년(1649) 에 건립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신전은 게이안 2년(1649), 도쿠가와 삼대 장군 이에미츠의 기진에 의한 것으로, 혼덴(본전), 헤이덴(폐전), 하이덴(배전)이 복도로 연결된 ‘권현 형식’으로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호조몬(보장문)에 걸린 큰 짚신
높이 4.5m, 폭 1.5m, 무게 500kg, 2,500kg의 볏짚이 사용되었습니다. 1941년부터 야마가타 현 무라야마 시의 유지에 의해 지금까지 7회에 걸쳐 봉납 되었습니다. 현재 짚신은 2008년에 봉납 된 것입니다. 거대한 짚신은 인왕의 힘을 표현하는 것으로 액막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니텐몬의 증장천(좌측)과 지국천(우측)
 
 
 

센소지의 오중탑은 덴케이 5년(942)에 다이라노 킨마사의 기진으로 건립되었지만,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붕괴, 소실되었습니다. 도쿠가와 삼대 장군 이에미츠에 의해 게이안 원년(1648)에 건립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던 오중탑도 쇼와 20년(1945)의 전화로 아쉽게도 소실되었습니다. 1973년, 패전과 서원 등을 갖춘 새로운 오중탑원이 재건되었습니다.


센소지 호조몬(보장문)
아와노카미(현 치바 남부지역을 다스리던 관직) 다이라노 킨마사가 무사시노카미(현 도쿄 서부, 사이타마 지역)로 보임된 덴케이 5년(942)에 해당 보임에 대한 기원성취의 사례로서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부는 삼 층으로, 상부 두 층은 수장실로 보물 등이 봉납 되어 있습니다.
 

센소지 카미나리몬
덴케이 5년(942)에 다이라노 킨마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건립 당시에는 코마가타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 현 장소로 옮겨지고 풍신과 뇌신이 놓였습니다. 현재 문은 게이오 원년(1865)의 대화재로 소실된 후, 1960년에 마쓰시타 전기 창립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씨의 기부로 부흥 재건되었습니다. 지금은 도쿄 아사쿠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카미나리몬에 걸린 큰 제등은 지름 3.3m, 높이 3.9m, 무게 700kg에 이르는 거대한 것으로, 제등 하단에는 금룡이 조각되어있습니다.

센소지 카미나리몬의 뇌신과 풍신상
카미나리몬 정면 좌측에는 뇌신이, 오른쪽에는 풍신이 모셔있습니다만, 게이오 원년(1865)의 대화재로 머리만을 남기고 소실되어 메이지 7년(1874)에 시오카와 렌교쿠씨의 보각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카미나리몬 뒷면에는 히라구시 덴츄의 ‘천룡’, 스가와라 야스오의 '금룡' 두 마리의 용신이 모셔있습니다.


호조몬(보장문)에 걸린 큰 짚신
높이 4.5m, 폭 1.5m, 무게 500kg, 2,500kg의 볏짚이 사용되었습니다. 1941년부터 야마가타 현 무라야마 시의 유지에 의해 지금까지 7회에 걸쳐 봉납 되었습니다. 현재 짚신은 2008년에 봉납 된 것입니다. 거대한 짚신은 인왕의 힘을 표현하는 것으로 액막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호조몬(보장문)에 걸린 큰 짚신
높이 4.5m, 폭 1.5m, 무게 500kg, 2,500kg의 볏짚이 사용되었습니다. 1941년부터 야마가타 현 무라야마 시의 유지에 의해 지금까지 7회에 걸쳐 봉납 되었습니다. 현재 짚신은 2008년에 봉납 된 것입니다. 거대한 짚신은 인왕의 힘을 표현하는 것으로 액막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