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사 우에노동물원은 메이지 15년(1882) 당시 농상무성 박물관국 소관으로 박물관(현 도쿄국립박물관)과 함께 박물관국 천산과 부속시설로 개원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입니다. 박물관은 개원 4년 후인 메이지 19년(1886)에 궁내성 소관이 되어 ‘제국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고 메이지 23년(1900)에는 ‘제실박물관’으로 변경되었지만, 동물원은 천산부 소관으로 오랫동안 정식명칭이 없는 채로 통칭 ‘우에노동물원’으로 불렸습니다. 다이쇼 13년(1924)에 황태자(쇼와 천황)의 성혼을 기념하여 도쿄시(현 도쿄도)에 하사되어 ‘우에노 은사공원 동물원’이라 불리고, 쇼와 22년(1947)에 현재의 명칭인 ‘동경도 은사 우에노동물원’으로 개정되었습니다. 2006년에 지정관리자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다마 동물공원, 카사이 임해수족관, 이노가시라 자연문화원과 함께 ‘공익재단법인 도쿄 동물원협회’ 관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이토구 우에노공원 9-83)

우에노동물원 서원의 호랑꼬리여우원숭이
우에노동물원 부지에는 에도시대에 이세츠 번주 도도가문, 히로사키 번주 쓰가루가문, 에치고무라카미 번주 호리가문의 세 다이묘의 저택이 있었습니다. 우에노란 호칭은 도도가문의 영지였던 이세의 이가 우에노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한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를 열기 전부터 우에노라는 지명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도도 이즈미노카미 타카토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를 열었을 때 토지를 받고 에도에서의 거주지로 삼았지만, 1624년 텐카이 승정이 도에이잔 간에이지 건립을 계획했을 때, 이 땅을 즉시 막부에 반납하고 우에노야마에 도쇼궁을 건립 헌상하고, 간쇼인을 지어 간에이지의 숙사로서 기증했다고 합니다.
도도가문은 간쇼인을 보리사로 삼았기 때문에 지금도 원내에는 도도가문의 묘비가 남아 있습니다. 간쇼인에는 도쿠가와 2대 장군 히데타다, 3대 장군 이에미츠가 도쇼궁을 참배할 때 머물렀다고 합니다. 칸칸테이는 타카토라가 이에미츠를 영접하기 위해 새운 다실이라 전해지며, 이에미츠가 산책할 때 휴식했다는 ‘이에미츠의 걸상바위’도 남아 있습니다. 이 부근은 우에노동물원 개원 당시인 1882년부터 1887년까지는 정문 앞마당에 해당하여 칸칸테이는 일반객이 휴식할 때도 이용되었습니다. (하단에 계속)

원내에 있는 간에이지의 오층탑은 1631년에 사쿠라 번주 도이토시카츠의 기증으로 건립되었습니다. 그 후 1639년에 소실되어 재건되었습니다. 높이 33m, 한 층에는 약사, 아미타, 미륵, 석가 사존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1958년에 도쿄도에 기증되었습니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흑따오기 축사와 학 축사에서 내려오는 비탈길 도중에 두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학 축사에서 개울 위로 놓인 다리로 센가와 상수에 이어져 있었지만 센가와 상수가 지하 수로가 되어 실제로는 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다리 옆에 ‘칸칸바시’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동물원’이란 명칭은 1866년에 발간된 후쿠자와 유키치가 쓴 ‘서양사정’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파견된 일본 대표단의 일원인 물산학자 다나카 요시오는 파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관 부속 쟈뎅 드 플랜트를 비롯한 시설을 견학하고 일본에도 이런 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쟈뎅 드 플랜트는 이름 그대로 식물원이며, 부속시설인 ‘메나쥬리’라는 동물사육장은 동물원에 해당하는 시설이었습니다.
1865년, 마치다 히사나리는 모리 아리노리 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사우스켄싱턴의 자연과학박물관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마치다는 문부성을 거쳐 박람회사무국 담당이 되어 부하인 다나카 요시오와 함께 1873년에 ‘대박물관 창설 건의’를 제출했습니다. 이 대박물관 구상은 동물원과 식물원, 도서관이 병설된 것으로, 우에노공원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1871년, 메이지 정부는 1873년 빈에서 개최되는 만국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의원 오오쿠마 시게노부를 총재로 한 박람회사무국을 설치하고, 마치다는 다나카 함께 국내의 다양한 물산을 모으고 이를 일반공개 할 목적으로 우치야마시타쵸(현 치요다구 우치사이와이쵸)에 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이곳에 부설로 동물사육장을 마련해 30종 77마리의 동물을 사육했습니다. 마치다는 1875년에 내무성 장관인 오오쿠보 도시미치의 밑에서 초대 박물관장이 되어 박물관 건설에 노력했습니다. (하단에 계속)

1877년, 우에노공원에서 제1회 내국관업박람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 자리로 우치야마시타쵸에 있던 박물관이 이전되고 인접한 간쇼인가하라에 부속 동물원을 세워 1882년 박물관과 함께 개원했습니다. 우치야마쵸 부지에는 로쿠메이칸이 건설되어 1883년에 개관하였습니다. 당시의 동물원 정문은 칸칸테이 비탈을 내려간, 현재 인도 사자를 공개하고 있는 ‘호랑이의 숲’의 앞 부근이었습니다. 부지는 학 축사, 사무실, 조류관으로 둘러싸인 현재의 동원 구역으로, 면적은 현재의 14.3헥타르의 10분의 1 정도였다고 합니다.
1886년 박물관과 부속 동물원은 궁내청 소관, 박물국 천산부 소속이 되었습니다. 그 초대 천산부장을 지낸 다나카가 초대 동물원장으로서 적임자이었겠지만 이후 1889년에 도쿄제국대학 이과대학 조교수였던 이시카와 치요마츠가 천산부장 겸 동물원장으로 임명되어 초대 원장이 되었습니다. 이시카와는 비와코 호수의 치은어를 타마강에 방류해서 은어를 번식시키는 등의 뛰어난 업적을 남긴 동물학자였습니다. 이시카와는 호주나 독일 등의 동물원과 적극적으로 동물을 교환하여 동물원의 사육전시동물의 충실을 도모했습니다.
1924년, 동물원은 궁내청에서 도쿄시(현 도쿄도)에 하사되어 오랫동안 ‘우에노 은사공원 동물원’으로 불리었습니다. 현재의 ‘도쿄도 은사 우에노동물원’이 정식 명칭으로 된 것은 개원하고 65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후의 ‘제국박물관’(현 도쿄 국립박물관)의 역사에 대해서는 「도쿄 국립박물관을 찾아서」를 참조하십시오.]

은사 우에노동물원은 메이지 15년(1882) 당시 농상무성 박물관국 소관으로 박물관(현 도쿄국립박물관)과 함께 박물관국 천산과 부속시설로 개원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입니다. 박물관은 개원 4년 후인 메이지 19년(1886)에 궁내성 소관이 되어 ‘제국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고 메이지 23년(1900)에는 ‘제실박물관’으로 변경되었지만, 동물원은 천산부 소관으로 오랫동안 정식명칭이 없는 채로 통칭 ‘우에노동물원’으로 불렸습니다. 다이쇼 13년(1924)에 황태자(쇼와 천황)의 성혼을 기념하여 도쿄시(현 도쿄도)에 하사되어 ‘우에노 은사공원 동물원’이라 불리고, 쇼와 22년(1947)에 현재의 명칭인 ‘동경도 은사 우에노동물원’으로 개정되었습니다. 2006년에 지정관리자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다마 동물공원, 카사이 임해수족관, 이노가시라 자연문화원과 함께 ‘공익재단법인 도쿄 동물원협회’ 관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이토구 우에노공원 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