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에노동물원에서 인기를 누리는 넓적부리황새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은 동물뿐만 아니라 직원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8년에는 15명의 사육사 중 3명이 소집되었고, 1941년에는 코가 타다미치 원장도 소집되어 후쿠다 사부로 기사가 원장 대리로 임명되었습니다. 사료부족도 심각해져 가로수 가지, 잎사귀나 차 찌꺼기 등을 사료에 섞어 부족함을 보충했습니다. 원내 벤치와 울타리의 철재도 군수로 공출되었습니다. 1943년에 도쿄시와 도쿄부는 병합되어 도쿄도가 되고, 우에노동물원에는 27마리의 맹수처분명령이 내려졌습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난 후 맹수처분으로 코끼리, 호랑이, 사자, 곰 등을 잃은 원내는 방공호와 고구마 밭으로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코가 원장과 직원도 전쟁에서 돌아와 이윽고 재건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단에 계속)
동물을 보충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의 동물교환이 재개되었습니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호글동물원은 사자와 퓨마, 마코앵무, 스컹크 등을 보냈고 그 답례로 두루미와 큰도롱뇽, 일본원숭이 등이 보내졌습니다. 1949년에는 어린이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코끼리가 왔는데, 태국에서 챠코(하나꼬), 인도에서는 아이들이 네루 총리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인디라가 도착했습니다. 인디라의 도착은 평화의 상징으로 전후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51년에는 이동동물원 운영위원회가 아시아 코끼리 점보를 기증하였고, 코가 원장은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국제동물원장연맹회의에 참석하고 회원으로 가입하여 우에노동물원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세계 각국의 동물원으로부터 동물들이 속속 도착하여 큰 호황을 누렸습니다. (하단에 계속)
보소 반도의 원숭이 서식지인 타카고야마의 바위산을 모델 삼아 미장으로 만들어진 원숭이 산. 지금도 우에노 동물원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시설은 사회성을 중시한 집단 사육이 일반적이었지만 일본 동물원에서는 개별 사육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종의 보존을 위해서도 무리에 의한 사육이 시급했습니다. 일본 동물원수족관협회는 1988년에 ‘종 보존위원회’를 결성하고 희귀동물에 대한 보호증식을 시작했습니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기존의 전시 사육에서 종의 보존과 희귀동물의 번식을 위한 이른바 동물원 보존계획의 역할을 맡아 그 활동을 넓히고 있습니다.

우에노동물원 서원 / 시노바즈노이케

전시동물의 충실을 기하기 위해, 1957년에 근처의 시노바즈노이케로 부지를 확장하여 서원이 설립되었습니다. 동원과 서원으로 나뉜 원내의 교통편의 위해 모노레일이 개통되었습니다. 그 후 1961년에는 서원과 동원을 연결하는 ‘이솝의 다리’가 놓였습니다.

현재 모노레일은 4대째로 2001년부터 운행하고 있습니다. 모노레일역에서는 역장님이 모노레일을 맞이합니다.

모노레일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조그만 여행이 시작됩니다.

화려하고 즐거운 내부

동원에서 서원까지는 짧은 승차시간이지만 아래로 시노바즈노이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우에노동물원 서원 / 시노바즈노이케

전시동물의 충실을 기하기 위해, 1957년에 근처의 시노바즈노이케로 부지를 확장하여 서원이 설립되었습니다. 동원과 서원으로 나뉜 원내의 교통편의 위해 모노레일이 개통되었습니다. 그 후 1961년에는 서원과 동원을 연결하는 ‘이솝의 다리’가 놓였습니다.

현재 모노레일은 4대째로 2001년부터 운행하고 있습니다. 모노레일역에서는 역장님이 모노레일을 맞이합니다.

모노레일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조그만 여행이 시작됩니다.

화려하고 즐거운 내부

동원에서 서원까지는 짧은 승차시간이지만 아래로 시노바즈노이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