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on December 6, 2019
Published on December 6, 2019

문호 오가이 주변에는 많은 재능이 모였습니다.


산닌죠고 회원, 간쵸로 정원에서(왼쪽부터 오가이, 고다 로한, 사이토 료쿠우, 메이지 30년 촬영.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소장)
메이지 29년(1896)에 창간한 문학 잡지 「메사마시구사」에서는 당시 문단을 이끌던 사이토 료큐우, 고다 로한, 오가이 세명에 의한 신작 문학 비평이 이루어졌지만, 대가들의 신랄한 비평에 젊은 문학청년들은 전전긍긍했습니다. 그중 하나인 다야마 카타이는 자서전 「도쿄 삼십 년」에서 ‘「메사마시구사」가 잡지 진열대(서점에서 잡지 종류와 함께)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보고 싶기는 하나, 보기는 싫고,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어 서점 앞에 서서 자신의 험담이 있는 부분만 보고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며 서둘러 나와버렸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가이는 소설, 번역,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집필했으며 다양한 문인, 화가들과 교류를 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메사마시구사」의 「산닌죠고」에서 함께 비평하던 고다 로한입니다. 한때 야나카 텐노지에 우뚝 솟아 있었다는 오층탑을 소재로 한 소설 「오층탑」을 집필한 로한 자신도 메이지 24년(1891)부터 2년 정도 오가이의 주택에서 가까운 야나카에 거주했습니다. 두 사람의 교류의 계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번역집 「오모카게」가 게재된 「고쿠민노토모」를 창간한 도쿠토미 소호 등이 주최하던 문학 서클에 오가이, 로한을 비롯해 오자키 고요와 츠보우치 쇼요 등도 참여한 것이 계기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오가이의 친구인 의사 가코 츠루도와 함께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였던 것 같으며, 로한이 오가이에게 보내는 슈토(술도둑, 젓갈의 일종)를 먹는 방법을 확인한 서한이 남아있습니다.

「오층탑」이 담긴 고다 로한의 「오바나슈」(국립 국회 도서관 소장)

고다 로한 필 오가이 수신 서한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소장)

 통렬한 문학 비평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어, 신진 작가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된 「산닌죠고」지만, 히구치 이치요를 격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여류 작가의 활약이 드물었던 당시, 오가이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비판을 했습니다. 우선 오가이는 「메사마시구사」창간호의 비판 「시기노하네가키」에서 ‘처녀답지 않은 경험과 관찰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치요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후, 문예지 「문학계」에 게재되어 호평을 얻은 「다케쿠라베」가 문예 잡지 「문예구락부」에 일괄 게재되면서 ‘이 사람에게는 참된 시인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오가이는 「산닌죠고」에 이치요를 더해 「요츠테아미」로 바꾸고 싶다고 동생 도쿠지로를 권유를 위해 몇 번이나 보낼 정도였지만, 불행히도 이치요는 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치요가 병으로 쓰러졌을 때도 오가이는 의사를 보내곤 했습니다.


「메사마시구사」제4권의 「다케쿠라베」비평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소장)

「다케쿠라베」가 게재된 「문예구락부」12편 임시 증간호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소장)

 청일 전쟁에 참전한 메이지 27년(1894) 이듬해, 오가이는 육군 군의관으로 바쁜 와중에 기자로 종군한 마사오카 시키와 전지에서 만나게 됩니다. 전지에서 글에 관한 대화의 꽃을 피운 두 사람은 이후에도 우의를 이어 나갔으며, 「메사마시구사」의 창간에 즈음해서는 시키 일문의 하이쿠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시키암에서 열린 메이지 29년(1896)의 새해의 시모임에 오가이가 참여했고, 오가이와 소세키라는 두 대문호가 처음 만난 계기가 됩니다.
또한, 오가이는 서양화가이자 서예가이기도 한 나카무라 후세츠와도 친분이 두터웠었습니다. 시키를 통해 지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삽화나 휘호를 종종 후세츠에게 의뢰했습니다. 특히, 후세츠의 글씨를 좋아해서 자신의 별장이나 오가이소 현판의 휘호도 후세츠에게 부탁했습니다.


「소세이닛키」에는 청일 전쟁 당시 종군 기자로 전쟁터로 향한 시키와 글에 관한 대화를 거듭해 우정을 쌓아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소장)
 
마사오카 시키 필 오가이 수신 엽서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소장)
 

「모진모고」(국립 국회 도서관 소장)
표지는 서양화가인 가와무라 키요오, 제목은 후세츠가 휘호했습니다.


후세츠작 「메사마시구사」 제11권의 삽화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소장)

 참고 문헌
「야네센 ‘요리미치’ 문학산책」팸플릿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특별전 메이지문단관측 오가이와 게이오 3년생의 문인들」팜플렛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협력
스이케츠 호텔 오가이소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다이토구립 시타마치 풍속 자료관


「다케쿠라베」가 게재된 「문예구락부」12편 임시 증간호 (분쿄구립 모리 오가이 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