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오카 가택에서 사용하던 우물 터
아오조라 문고 「정원의 기록」
아오조라 문고 「병상육척」
아오조라 문고 「먹물 한 방울」
메이지 31년(1898), 시키는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에 「정원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시키암의 정원에 대한 수필을 실었습니다. ‘나에게 스무 평의 정원이 있다.’라는 서두로 시작해서 이사한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는 벌거벗은 정원이었다고 기록하며, 집주인이 작은 소나무 세 그루를 심어 주거나 이웃 노인에게서 받은 장미 묘목을 심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장미가 네다섯 송이 피었을 때는 글과 시를 읊을 기력이 고취되었다고도 했습니다. 나팔꽃이 지는 8월 말 무렵 그리도 기다리던 싸리 꽃이 하나둘 피어나면, ‘날아갈 것 같은 기쁨’이라고 표현하고 가을이 되면 바람의 걱정된다는 등, 정원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한 글을 썼습니다. 작은 정원의 초목 성장이 시키의 문학과 투병의 나날을 지탱하고 있던 사실은 ‘정원은 나의 천지이며 화초는 나의 유일한 시의 소재이다’라는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수필의 마지막에 있는 하이쿠가 지금의 시키암의 정원을 말해줍니다.
ごてごてと草花植ゑし小庭かな 子規
잇따라 초목을 심어가는 작은 정원이구나 시키
메이지 34년(1901) 무렵의 정원 (시키암 기탁 자료)
왼쪽 시렁은 메이지 34년 6월에 정원사를 불러 만든 수세미 시렁입니다. 지금의 수세미 시렁의 두배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정면에 있는 쪽 울타리에는 나무문이 있고 왼쪽 너머로 우에노 언덕이 보입니다.
맨드라미 꽃이 핀 정원을 바라보며 쉬고있는 야에. 메이지 44년(1911) 9월 문하생인 가와히가시 헤키고도 촬영 (시키암 기탁 자료)
시키는 사계절의 변화를 읊고 있습니다.
봄
春惜しむ一日画をかき詩を作る (明治35年(1902))
봄을 아쉬워하며 하루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여름
夕立や日のさす方へふつて行く (明治30年(1897))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내리는 소나기구나
가을
鶏頭ヤ糸瓜ヤ庵ハ貧(ひん)ナラズ (明治34年(1901))
맨드라미가 있고 수세미가 있어 나는 가난하지 않구나
겨울
人も来ぬ根岸の奥よ冬籠(ふゆごもり) (明治30年(1897))
사람도 찾지 않는 네기시의 깊숙한 곳에서 겨울을 난다
시키암의 정원에는 여동생인 리츠와 친구들이 병상에 있는 시키를 위로하기 위해 다양한 꽃나무를 심었습니다. 「정원의 기록」에는 정원 그림이 있고 꽃나무가 하이쿠로 그 자리마다 쓰여 있습니다. 밤나무, 대나무, 소나무, 싸리, 억새, 맨드라미, 도라지, 나팔꽃, 베고니아, 분꽃, 비름, 백일초 등입니다. 채송화도 있습니다. 시키가 좋아하던 장미와 시키암의 상징과 같은 수세미는 당시에는 아직 없었고, 수세미 시렁은 메이지 34(1901)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마사오카 가택에서 사용하던 우물 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