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노하라 마사요시 씨

그림은 안쪽에서 그리는 세밀한 작업으로, 장인의 기술이 돋보인다.

전통적인 디자인과 함께 새로운 작품도 많다.
에도 풍경이란

에도 풍경 제작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에도 풍경 제작사가 되기까지
어릴 적부터 풍경 제작사가 되시려고 생각하셨나요.
아뇨, 어렸을 때는 일을 돕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어요. 중학생 시절에는 정말로 싫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어느 정도 돕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집에 가면 부모님께서 밤 8, 9시까지, 여름에는 자정까지 일하시고 계셨거든요.
회사를 그만두고 에도 풍경 제작사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생 시절부터 계속 돕기는 했어요. 단지, 형제가 둘 다 가업을 이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취직했지요. 하지만 같은 집에 살다 보니 돌아오면 모두 일을 하고 있거든요. 자정 무렵까지 계속.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집에 돌아오면 다들 이렇게 바쁜데 굳이 남의 일을 할 필요도 없지 않나 해서 일을 그만두었지요.
장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인은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집에 다른 장인이 출입하는 경우도 있었고, 부모님의 모습을 계속 보면서 자랐으니까요. 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어떤 다른 장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인이 된 후에도 이질감은 없었고, 오히려 장인이 되고 싶었지요.
작품에 대해서
1년에 얼마나 작품을 제작하시나요.

디자인의 종류는 어느 정도 되나요.
무한대로 있어요. 그리려고만 하면 무엇이든 그릴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있을 때는 부탁받은 것을 만듭니다.
오리지널 상품을 다수 발표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본 전시회로 해외에 간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해외에서는 풍경을 실외에 매단다는 인식이 전혀 없어서 실내에 장식합니다. 그리고 같은 전시회에 참가한 다다미 업자분께 들은 말이 힌트가 되었어요. 외국 분이 다다미 가장자리의 천 부분을 1m만 사서 허리에 감거나 머리에 감는다고 하더군요. 그쪽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멋진 것을 다다미에만 사용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더군요. 그것을 보고, 좋은 것이라면 굳이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귀걸이나 팔찌도 만들었습니다.
그 밖에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떤 것이 있나요.
풍경은 지금까지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구매하셨지요. 젊은 분들은 거의 구매를 안 했어요. 그래서 작고, 가격이 저렴하고, 귀여운 것을 만들자는 생각에 은방울꽃 모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처마가 없는 집이 많아서 실내에서도 장식할 수 있도록 탁상형도 만들고 있습니다.

시노하라씨에게 있어 에도 풍경 제작사란
시노하라씨는 이 직업에 어떤 의미를 두시나요.


시노하라 마사요시 씨

그림은 안쪽에서 그리는 세밀한 작업으로, 장인의 기술이 돋보인다.

전통적인 디자인과 함께 새로운 작품도 많다.
에도 풍경이란

시노하라씨의 부친인 요시하루씨가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유리 풍경이 에도시대부터 만들어져 왔으므로 ‘에도 풍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현재, 풍경을 제작하는 곳은 ‘시노하라 풍경 본점’과 ‘시노하라 마루요시 풍경’ 2곳뿐입니다. 풍경의 기원은 중국으로, 대나무숲에 매달아 바람의 방향과 소리의 느낌으로 길흉을 점치는 도구가 진화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에도 풍경 제작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이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족이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일이라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우연인 거지요. 하지만 하면 할수록 역시 점점 좋아지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자신은 25살이나 30살이 되어도 다른 직업으로도 충분히 살아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쨌든 일단 돕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5살 정도 때 한번 냉정하게 생각을 해봤죠. 주위를 둘러보니 이 일을 하는 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반드시 이 일을 해야 되겠다는 의식이 생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