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on February 21, 2014
Published on February 21, 2014
장인의 거리를 찾아서

 

작업에 ‘혼’을 담아서

금속세공사
가와시마 토시유키 씨

1951년 4월 입문. 12년간의 수행 후 독립. 1975년 ‘유한회사 카와시마 장식공예’를 설립. 1935년 4월생. 1951년 10월에 츠치야 카츠히로 씨 문하로 입문 후 10년간 수행. 1962년 3월 츠치야 씨의 동문인 사사키 킨고 씨 문하에서 수행 시작. 1963년 5월 독립. 1983년 유한회사 카와시마 장식공예를 설립. 1991년 2월 다이토구 우수기능자 표창. 1996년 11월 도쿄도 우수기능장 수여.
도쿄도 스기나미구 가쿠조지 사찰 본당, 주지 거처, 정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의 고오린센지의 오층탑 등 다수 사찰의 금속 장식을 제작.


 


가와시마 토시유키 씨
 

문화재 복구도 다룬다. 간에이지의 천개 수리 때 부족한 부분을 가와시마 씨가 제작하였다. (위에서 두 단째 부분) 7장의 금박을 수은으로 붙인 후 문양을 새긴다. 1장의 금박을 옻으로 붙이는 요즘의 ‘금박 입힘’에 비해 광택에 무게감이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미니 미코시(신여). 미코시 제작에는 목공, 금속세공, 매듭, 금박, 옻칠 등 일곱에서 여덟 업종의 장인이 관여한다. 본 미코시 제작에는 약 20년이 소요되었다. 대좌는 6자 크기인 실물의 10분의 1인 약 18cm이다.

카자리(금속세공)란

 
금속으로 만든 비녀, 장신구 등의 섬세한 장식품을 ‘카자리 (장식)’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제등 장식이나 담뱃대 제작을 다루는 장인을 ‘錺(카자리)師’라고 했습니다. 요즘에는 신사나 사찰의 금속 세공을 다루는 장인은 ‘錺師’라는 한자를 씁니다. 한편, 전통 무사인형 등의 금속 세공을 하는 장인은 ‘飾師’라는 한자가 사용됩니다.
 

금속 세공사로서의 보람이란

 
어려운 주문이 들어왔을 때의 기쁨입니다.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데, 절반은 고통일지도 모르지만, 해결했을 때는 기쁘지요. 손님한테 얻은 힌트로 고안한 것으로 특허를 신청하려고 한 것이 꽤 있습니다.
 

작업에 관해서

 
가장 많은 일은 사찰의 가문입니다. 신문(神紋)이나 본산문(本山の紋)이라고도 하지요. 말사(중심이 되는 신사에 소속되어 그 산하에 있는 신사)나 그 사찰의 가문도 있습니다. 사찰에 따라서는 2,3개의 다른 무늬가 붙어 있는 곳도 있어요. 독지가가 자신의 가문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패나 불단의 금속세공도 다룹니다. 보통 위패가 아니라 조금 상급 위패를 은으로 만들거나 하지요. 보리사를 신축했을 때는 입구의 장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등롱 30대 제작을 맡아서 바빴어요. 지금 칸다묘진 신사에 죽 들어서 있는 등롱은 2004년부터 시작해서 총 55대를 만들었습니다.

금속세공을 시작하신 계기를 알려주세요

 

금속세공을 시작하신 계기를 알려주세요.

 
 전쟁이 끝나자마자(1951년)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글보다는 기술을 배우라는 시대였지요. 아버지는 그래도 고등학교는 다니라고 하셨지만, 바로 그때 기후현에 있는 본가에 모내기를 도우러 온 사람이 도쿄에서 사람을 구하니 가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결정하고는 장인이 되려고 도쿄로 나왔지요. 10년 동안 기술을 배운 후에 2년 정도 이곳저곳에서 수행하고 독립했습니다. 그 뒤로는 쉴 새 없이 바빴어요. 서른 대여섯부터 쉰다섯까지는 아침 7시부터 저녁 19시까지 일을 했습니다. 사십견도 4번이나 걸렸지요. 아파서 잘 수가 없었는데 가장 길었을 때는 반년 이상 갔습니다.
 

현재 세공사는 몇 분 정도가 계시나요?

 
 도쿄에는 다섯 명이나 일곱 명정도 있을 겁니다. 서로는 연결이 안 되어서 말이죠. 관서지방에는 예전에 50명 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절반 정도 아닐까요. 견학하러 가봐도 교토의 건물은 입구가 좁고 안쪽으로 길잖아요. 입구에서 잠시 얘기하고는 끝이죠. 기술은 보여주지 않아요. 게다가 관서 쪽은 분업이기 때문에 절단, 조각, 조립하는 사람이 각각 다르지요. 장인이 좀처럼 독립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약물 배합은 비전으로 장남에게만 가르치지요.
 

작품에 대해

 

제작 공정을 알려주세요.

 
 먼저 그림을 그려서 본을 만듭니다. 그것을 금속 위에 두고 먹으로 표시하지요. 가문의 경우는 견본집이 있기 때문에 복사기로 확대하고 수정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1장의 판에서 정으로 따기 시작하는데 가위도 가끔 사용합니다. 모양을 따낸 다음 갈아내고 주변을 칼로 다듬는 ‘키사게’를 하고 나서 도금집으로 넘깁니다. 도금 후에 용도에 따라 불소를 바르거나 착색으로 마무리하지요.
 

재질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가문은 재력이 있는 사람은 금과 은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찰이나 신사는 구리와 놋쇠가 많은데 도금을 해서 사용합니다. 구리가 더 부드러워서 문양을 조각하거나 구부리기도 편하지만, 황동은 단단하지요. 미코시는 놋쇠만 사용합니다. 구리를 사용하면 완성했을 때 검게 변하거든요. 담뱃대도 놋쇠로 만듭니다. 광택을 위해 로듐(백금)으로 도금합니다. 은은 다소 색이 어둡지요. 게다가 로듐과 크롬은 벗겨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요즘은 로듐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아요. 크롬은 굉장히 비싸거든요. 정제에 사용한 폐수를 처리하는 데도 돈이 들고 녹일 때에도 연기가 나기 때문에 최근에는 도금집도 직접 녹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판금이라는 가공금만 사용하기 때문에 색도 예전과 달라졌지요.
 

문양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대체로 당초문양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당초라고 해도 보통 당초, 황연 당초, 쑥 당초, 모란 당초 등으로 다양합니다. 예전에는 일반 당초는 싫다고 손님이 직접 지정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이런저런 당초로 만들어달라고 하는 등, 손님의 요구대로 여러 가지를 만들거나 했지요. 하지만 전통은 버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출용 같은 경우는 하기도 하지만, 절이나 신사에 대해서는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습니다. 문양은 누가 조각한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각각 특징이 있습니다. 스승의 출신이나 정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다르고, 관동과 관서도 다릅니다. 큰 기본 틀은 있습니다만.
 

도구에 대해

 

사용하시는 도구에 대해 가르쳐주세요.

 
 우선 쇠망치를 말하자면 머리가 둥근 것이나 편평한 것으로 50개 정도 있고 나무망치도 2,30개 있습니다. 금속 부품을 이을 때는 겹쳐서 납땜합니다. 금속을 절단하거나 문양을 따내기 위한 정은 대체로 5,000개 정도 됩니다. 작업장에 서랍도 몇 개나 되고 어디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도 알고 있지요. 특성도 파악하고 있으니 목적에 따라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지 금세 떠오르지요. 그 하나가 보이지 않으면 찾아서 사용합니다. 문양이 들어간 정은 전문장인이 만든 것이고 다른 것들은 직접 만든 것입니다. 요즘도 새로 만들기도 하고 자주 사용하는 것은 보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은 강철로 만드는데, 하나씩 재질에 따라 담금질을 조절하기 때문에 각각 상태에서 차이가 납니다. 담금질이 잘되어 있으면 평생 사용해도 닳지 않지요. 대충 사용하는 것처럼 보여도 도구는 소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날 끝은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고 있습니다.
 
 밑에 있는 작업대도 강철이지만 담금질은 안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의 받침대는 나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큰 망치로 쳐도 튕기지 않거든요. 재질은 느티나무입니다. 직업상 목수와는 사이가 좋아서 사찰 공사 등에서 남은 자투리라든지 기둥을 만들 때 안 쓰는 뿌리 쪽을 얻어오곤 합니다. 작업장에 10개 정도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에 드는 것 중의 하나인데 옮길 수 있도록 손잡이가 달려있지요. 받침대의 이쪽에는 스탠드를 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작업에는 극약도 사용하는데 시안이나 청산가리, 황산이나 염산이 가공에 필요합니다. 금속은 만지면 손기름으로 얼룩지고, 단단하기 때문에 부드러워질 때까지 가스 불로 새빨갛게 달구면 새까매져 버리지요. 이런 것을 씻어낼 때 황산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납땜은 먼저 염산으로 닦아내지 않으면 붙지 않아요. 예전에는 청산가리도 사용했습니다. 덩어리를 부숴서 사용하곤 했는데, 잘못 입에 들어가 죽은 사람도 있어요. 우스갯소리 같지만 그런 위험을 알고 있으니 취급도 조심하지요. (즐겨 사용하는 이동식 작업대 앞에서)

가와시마 토시유키 씨
 
 

문화재 복구도 다룬다. 간에이지의 천개 수리 때 부족한 부분을 가와시마 씨가 제작하였다. (위에서 두 단째 부분) 7장의 금박을 수은으로 붙인 후 문양을 새긴다. 1장의 금박을 옻으로 붙이는 요즘의 ‘금박 입힘’에 비해 광택에 무게감이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미니 미코시(신여). 미코시 제작에는 목공, 금속세공, 매듭, 금박, 옻칠 등 일곱에서 여덟 업종의 장인이 관여한다. 본 미코시 제작에는 약 20년이 소요되었다. 대좌는 6자 크기인 실물의 10분의 1인 약 18cm이다.

 

카자리(금속세공)란

 

 
금속으로 만든 비녀, 장신구 등의 섬세한 장식품을 ‘카자리 (장식)’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제등 장식이나 담뱃대 제작을 다루는 장인을 ‘錺(카자리)師’라고 했습니다. 요즘에는 신사나 사찰의 금속 세공을 다루는 장인은 ‘錺師’라는 한자를 씁니다. 한편, 전통 무사인형 등의 금속 세공을 하는 장인은 ‘飾師’라는 한자가 사용됩니다.
 

금속 세공사로서의 보람이란

 
어려운 주문이 들어왔을 때의 기쁨입니다.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데, 절반은 고통일지도 모르지만, 해결했을 때는 기쁘지요. 손님한테 얻은 힌트로 고안한 것으로 특허를 신청하려고 한 것이 꽤 있습니다.
 

작업에 관해서

 

 
가장 많은 일은 사찰의 가문입니다. 신문(神紋)이나 본산문(本山の紋)이라고도 하지요. 말사(중심이 되는 신사에 소속되어 그 산하에 있는 신사)나 그 사찰의 가문도 있습니다. 사찰에 따라서는 2,3개의 다른 무늬가 붙어 있는 곳도 있어요. 독지가가 자신의 가문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패나 불단의 금속세공도 다룹니다. 보통 위패가 아니라 조금 상급 위패를 은으로 만들거나 하지요. 보리사를 신축했을 때는 입구의 장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등롱 30대 제작을 맡아서 바빴어요. 지금 칸다묘진 신사에 죽 들어서 있는 등롱은 2004년부터 시작해서 총 55대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