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on February 21, 2014
Published on February 21, 2014
장인의 거리를 찾아서

 

에도 주머니 장인
후지이 나오유키

도리고에 신사 근처에서 3대째 영업하는 에도 주머니 장인. 관련 기업에서 8년 근무 후 가업을 이음. 옛 나무틀을 이용하여 담뱃갑을 제작하는 주머니 장인은 도내에서도 수가 적다. 헤세이 10년(1998)에 다이토구 우수 기능자 표창을 받았으며, 일본의 전통 공예의 매력을 전하기 위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후지이 나오유키
 

주문으로 제작한 담뱃갑.
 

캇사이 주머니. 남김없이 전부(잇사이캇사이) 무엇이든 넣는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에도 주머니란

 

요즘의 지갑이나 파우치, 가방 등에 해당하는 물건을 넣는 주머니 형태의 것을 총칭하여 후쿠로모노(주머니 형태의 것들. 이하 주머니)라고 부릅니다. 지갑이나 캇사이 주머니, 가죽 케이스 등 주머니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특히 에도에서는 담뱃갑이 상인들의 장식품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진 담뱃갑을 지녔다고 전해집니다.

 

은사 담뱃갑에 관한 에피소드

 

창업기의 작업 풍경 (후지이 나오유키씨 제공)

 
초대 때 만주 사변(쇼와 6년(1931)) 때 출정하는 군인을 위해 15만개의 은사 담뱃갑을 몇 년에 걸쳐 납품했습니다. 당시 도쿄에는 15군데 정도의 담뱃갑 장인이 있었기 때문에, 1군데 당 1만개를 주문 받은 셈이 됩니다. 야나기바시에 옛날에 마루에무 마츠자키라는 가방집이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궁내청에 납품했다고 합니다.

에도 주머니 장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일에 대해서

 

에도 주머니 장인이 되신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부친 일을 어렸을 때부터 돕다가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선 느낌입니다. 본격적인 수행은 20살 이후부터이고 장인 경력은 37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일의 내용은 말씀해주세요.

 
 주머니 제작 공정은 재단, 피할, 봉제, 마무리로 이어지는데 저희는 대량생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꽤 작은 것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대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리메이크도하지요. 예를 들어 입던 옷을 사용해서 만들거나 손수건을 이용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품인 기모노 띠로 지갑을 만들어서 유품을 나누고 싶다거나 하는 주문도 있습니다.
 

에도 주머니에 대해

 

어떤 제품을 만드시나요?

 
 에도 시대에 사용되던 주머니를 연구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원래 저희는 담뱃갑을 만드는 장인이었지만, 염낭이나 캇사이 주머니와 같이 들고 다니는 종류의 가방 등, 즉 에도의 느낌을 풍길 수 있는 것을 골라서 만들고 있습니다.
 

소재는 어떤 것을 사용하시나요?

 
 주로 소가죽이지만 무늬가 있는 사슴 가죽도 사용합니다. 무늬가 있으면 역시 에도 시대의 분위기가 나옵니다. 자투리 천도 사용합니다. 가죽 말고도 원단으로 가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용합니다.
 

전통적인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의 주머니도 만드시나요?

 
 집어넣은 것이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는 것이 변하면 그에 맞는 것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지요. 요즘에는 태블릿이 나오기 때문에 태블릿 케이스를 만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즉 내용물에 따라 주머니도 변하는 것이지요.
 

제조 기술에 대해서

 

전체적인 작업 공정을 알려주세요.

 
 대표적인 담뱃갑을 예로 들면 가죽을 재단한 다음, 접는 부분을 얇게 하지 않으면 가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할이라고 해서 기계로 테두리를 얇게 만듭니다. 그러면 구부리기 쉬워집니다. 그 작업 다음에 뒤를 덧댑니다. 안에 심지 등의 안감을 넣는데, 이 공정 다음에 재단해서 조립합니다. 그 다음에는 재봉틀 질과 봉제 공정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나무 틀에 넣어 마무리하지요.
 

담뱃갑 나무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심지를 나중에 대는 종류의 담뱃갑은 분리된 나무틀을 꽂아서 늘려갑니다. 이와 같이 넣어 가면, 서서히 두께가 생기면서 둥그스름해져 갑니다. 제일 꽉 찬 느낌이 들 때 두드려서 곡면을 잡아주고 심지를 안쪽에 잘 붙입니다. 그것을 밖에서 두드리고 롤러로 다시 곡면을 잡습니다. 마지막에 인두로 마무리합니다. 나무 틀이 분리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가죽은 연하면 늘어나고 딱딱하면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나무틀이 몇 장 있어서 가죽 종류에 따라 미세하게 조정합니다. 담뱃갑의 크기에 따라 더 넓거나 깊거나 하기 때문에 나무틀의 크기가 다르지요.
 

나무틀을 넣고 나무망치와 롤러로 형태를 잡아간다.

 

기술이 필요한 공정은 무엇인가요?

 
 역시 이 곡면이 아닐까요. 가죽은 일부가 늘어나기 때문에 곡면을 잡기 쉽습니다. 천은 곡면이 잡힌다 해도 가죽만큼은 아닙니다. 담뱃갑은 접합하는 부분이 있어서 잘 붙도록 접착제도 골라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접착제만해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작업에 따라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습니다. 한 종류의 접착제만으로는 할 수 없지요.
 

도구에 대해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예를 들면 모서리를 이렇게 모으기 위해서 장인은 주걱을 사용합니다. 꽤 중요한 도구지요. 다른 것으로는 늘 사용하는 가죽 칼이 있는데 가죽에 틀을 놓고 재단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롤러도 마무리할 때 꽤 자주 사용하는데 붙인 곳을 눌러줄 때 사용하면 편리하지요. 예전에는 주로 망치를 사용했는데 붙일 때는 롤러가 균등하게 힘을 주기 때문에 좋습니다.
 

옛날 도구와 지금 것은 차이가 있나요?

 
 유압 재단기 등은 편리하지만 옛날에는 없었지요. 그래서 열처리한 칼날 틀을 나무 망치로 두드려서 재단했습니다. 그리고 재봉틀은 비교적 빨리 도입됐는데, 제가 어릴 무렵부터 많이 사용됐습니다. 재봉틀은 비교적 오래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장인으로서의 고집에 대해서

 

에도 주머니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쓰시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가문이나 범자(브라흐미 글자)를 넣기도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일본 느낌을 살리고 싶기 때문에 일본풍을 선호하는 손님들을 위해 만들려고 합니다. 주머니에 놓는 자수는 ‘테부리’라고 해서 기술자가 바늘이 하나인 미싱으로 놓은 자수입니다. 이것이 꽤 느낌이 좋아서 마음에 듭니다. 기술자만의 독특한 글씨체지요. 이런 방법으로 외국인의 이름을 발음대로 수놓아서 선물하면 대단히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가령 봉제라도 바느질 선은 절대 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삐딱하면 기분이 나쁘니까요. 그런 점은 특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장인으로서의 긍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37년을 했지만 질리지가 않네요. 점점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 진다고 할까, 처음에는 실패가 많았지요.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분하지만, 해를 거듭해 가면서 실패가 줄면서 더불어 궁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물론,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안은 작업을 하다 보면 떠오르곤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안주머니를 달 때, 주름을 만들어 꿰매면 주머니가 부푼 형태로 유지된다는 아이디어가 생각난다든지 하는 것이죠.
 예전에는 장인이라 하면, 업체나 판매점에서 주문을 받아서 같은 물건을 계속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일정한 형태를 계속 만들기 때문에 능률은 오르지만, 같은 물건을 계속 만들면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양한 물건을 다루고 다양한 고안을 하지 않으면 좋은 물건은 나올 수 없지요.
 요전에도 지갑 안감으로 비단 원단을 썼는데, 그냥 재단해서 만들려고 하니 너덜너덜해져 버렸지요. 그래서 어쩔까 하고 궁리하던 중, 원단 업체에 풀어짐 방지 가공이 있다는 기억이 나서 스프레이 접착제를 뿌려보니 풀어짐이 멈췄습니다. 아,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처럼 여러 부분에서 아이디어가 생각나고 해결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매우 재밌습니다.


후지이 나오유키
 
 

주문으로 제작한 담뱃갑.
 

캇사이 주머니. 남김없이 전부(잇사이캇사이) 무엇이든 넣는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에도 주머니란

 

 
요즘의 지갑이나 파우치, 가방 등에 해당하는 물건을 넣는 주머니 형태의 것을 총칭하여 후쿠로모노(주머니 형태의 것들. 이하 주머니)라고 부릅니다. 지갑이나 캇사이 주머니, 가죽 케이스 등 주머니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특히 에도에서는 담뱃갑이 상인들의 장식품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진 담뱃갑을 지녔다고 전해집니다.
 

은사 담뱃갑에 관한 에피소드

 

창업기의 작업 풍경 (후지이 나오유키씨 제공)
 
초대 때 만주 사변(쇼와 6년(1931)) 때 출정하는 군인을 위해 15만개의 은사 담뱃갑을 몇 년에 걸쳐 납품했습니다. 당시 도쿄에는 15군데 정도의 담뱃갑 장인이 있었기 때문에, 1군데 당 1만개를 주문 받은 셈이 됩니다. 야나기바시에 옛날에 마루에무 마츠자키라는 가방집이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궁내청에 납품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