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on February 21, 2014
Published on February 21, 2014
장인의 거리를 찾아서

 

도쿄 은기 장인
가미카와 카즈오

쇼와 52년(1977)에 선대로부터 2대째 소쇼(宗照)를 계승한 후 히가시쿠니노미야 문화 포상, 우수 기술장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음. 에도 말기에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은기 장인 히라타 센노죠를 선조로 하는 히라타파의 흐름을 계승하여 11대째 내려오는 전통의 기술을 지키고 있다.


 


 


가미카와 카즈오
 

에도 시대에 간행된 「인륜훈몽도휘」에서 발췌. 은기의 뿌리를 엿볼 수 있다.
(국립 국회 도서관 소장)
 

많은 기술로 제작된 은 주전자. 수중에 남아있는 유일한 선대의 작품.

도쿄 은기란

 

변색하는 은의 성질을 이용해 중세 유럽에서는 독살을 방지하기 위해 은 식기가 애용되었습니다. 이렇듯 은기는 사람의 생활과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며,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 현재의 긴자(은좌)에 있던 긴자야쿠쇼에서 은화가 주조되었고 경제 발전으로 번창한 겐로쿠 문화에서는 은이 장식품으로 인기를 끄는 등, 도쿄가 은기 산지의 중심으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전통 공예 일가로서

 

 
부친인 카즈오씨를 스승으로 3남1녀가 전통 공예에 종사하고 있다.

 
저희 집은 전통 공예 일가입니다. 일단 이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희 조상에 은기 제작으로 유명한 히라타 센노죠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부터 시작해서 제가 11대가 됩니다.

은장인으로서

 

장인이 되신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아버지가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느낌입니다. 직공 집안이므로 이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늘 아버지가 일하시던 옆에서 놀곤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수행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입니다. 어릴 때부터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들어가니 일단 밑바닥부터 시작했지요. 우선은 거래처 심부름부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자전거로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요.
 

이 일을 하신지 어느 정도되시나요?

 
 16살부터 했습니다. 지금 68살이니 이럭저럭 52년정도 됐군요.
 

옛날에 비하면 일의 내용이 변했나요?

 
 시대에 따라 꽤 바뀌었어요. 제가 수행하던 당시에는 주전자나 차주전자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일본에서 골프 붐이 크게 일어서 골프 우승컵이 많아졌습니다. 밤낮 할 것 없이 365일을 쉴새 없이 만들었지요.
 주전자가 적어진 이유는 전기 주전자나 페트병 등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전자에 일부러 물을 끓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주전자에 끓인 물이 더 맛있어요. 철에 비해 은기는 열전도가 좋아서 빨리 끓습니다. 놋쇠 주전자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은 제품은 특히 맛있게 끓일 수 있지요.
 
도쿄 은기에 대해서
 

은기 제작에도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 있나요?

 
 없습니다. 오히려 등장하면 안되지요. 그 뜻은 옛날부터 해온 방식이 물건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지요. 그것을 지켜 나가지 않으면 망쳐버립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결국에는 지금까지 축적해 온 기술을 살려서 훌륭한 형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에도 시대와 지금이 다른 점은 다소 기계화되었다는 점일까요? 손으로 두드려 만드는 것도 좋지만, 기계를 사용한 스피닝이라는 기법이 있기 때문에, 옛날과는 그 점이 조금 차이가 있지요.

스피닝 가공에서 사용하는 주걱과 목형
 

도쿄 은기가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도쿄는 지역으로 보면 가장 화려합니다. 다이토구, 분쿄구, 아라카와구 3개 지역에 장인들이 모여있어요. 장인이 잔뜩 모여있어서 좋은 점은 이것들을 취급하는 상인도 이곳으로 온다는 것이지요. 여러 가지 것들을 사 모을 때 여기에 오면 바로 살 수 있으니까요. 이 지역이 아니라도 일은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곳에 사는 것이 좋겠지요.
 여담입니다만, 가나자와에 금박이 있지요. 에도 막부는 금을 엄격히 통제했는데, 1그램의 금은 대략 1엔 동전 정도 무게지만, 몇 평방 미터의 크기까지 늘릴 수 있어요. 이런 기술은 가나자와 밖에 없습니다. 에도에서는 금을 금방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로 가공할 수 있었지요. 이렇듯이 산지의 문화와 역사는 맞아떨어지게 되어있어요.
 

은 제품은 얼마나 오래가나요?

 
 가령, 지금 만들고 있는 이 은제품은 어느 정도 간다고 생각하세요? 유리라면 깨지면 그만이지만, 이 은은 깨지지 않고 찌그러질 뿐입니다. 그것을 다시 두드려 고칠 수 있지요. 그렇게 하면 뭐 수천 년은 가겠지요. 은 제품은 기원전 3000년 정도의 유적에서도 출토됩니다. 지금부터 5000년 정도 전이지요. 그러니 은은 한 평생 정도만을 쓰는 물건이 아니지요.
 옛날 주전자를 고쳐달라고 오시는 분도 계시는데 도저히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재질의 문제가 아니라 옛날에 정으로 문양을 깊이 새긴 것 같은 경우는 두께가 매우 얇아서 사용하다 보면 잘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만큼은 고칠 수 없어요.
 

은 제품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귀한 재료로서의 은의 가치와는 별도로 은 제품의 어떤 점이 좋은가 하면, 은 그릇은 맛이 달라집니다. 부드러워지고, 뾰족한 느낌이 없어지고 매우 입의 감촉이 좋아집니다. 초 등은 은기로 마시면 최고지요. 유리 그릇이라면 그만큼 맛이 나지 않아요. 정말 맛이 바뀌는지 호도가야에 있는 맛과 향기 전략 연구소(현재는 가야바쵸로 이전)라는 곳에 의뢰해서 실험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확실히 맛이 바뀐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증명을 했지요.
 

제작 공정에 대해서

 

제작 공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먼저 전문 소매점에서 은괴를 사옵니다. 다음에 제련소에서 은기를 만들기 위한 두께와 폭으로 가공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재료를 망치로 두드려서 형태를 만들어 가지요. 마지막으로 가식이라고 해서, 무늬를 넣습니다.
 

전통적인 기법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예를 들어, 우치코미조우간(타입상감)이라는 기법은 표면을 평평하게 만드는데, 금을 은행나무 잎처럼 실톱으로 잘라 용접 후에 두드려서 평평하게 합니다. 그리고 정으로 은행나무답게 무늬를 넣습니다. 그것을 똑같이 만들면 재미없기 때문에, 반대쪽에 다시 같은 금을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은을 붙입니다. 은, 금, 은의 세 층이 됩니다. 은이기 때문에 두드리면 하얗게 되지만, 줄로 갈아내면 금이 어렴풋이 나타나지요.
 
 이것은 무늬 주위를 정으로 두드려서 두드러지게 만든 것입니다. 안을 보면 움푹 들어가있어요.
 
 이 그릇은 대나무를 본 딴 것입니다. 진짜 대나무는 마디가 곧게 뻗어있지만, 그럼 별로 재미없기 때문에 조금 강조했습니다. 안을 보면 복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술이라도 마시면 복이 오겠지요. 이것도 재미지만, 망치로 하나 하나 두드려서 만들었습니다. 돗자리 무늬 입히기라는 기법인데, 돗자리 무늬라는 것은 일본뿐입니다. 유럽에도 미국에도 없는데 왜냐하면 다다미 문화가 없기 때문이지요. 일본이기 때문에 나온 발상으로 이런 기술이 생긴 것이지요. 중요한 점은 시대에 따라 만드는 제품은 바뀌기 때문에 한가지 기법만으로 꾸려간다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만드는 작품은 전혀 달라집니다.

 다른 기법으로 기리바메(잘라 끼우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은 본체를 은행 형태로 일부 잘라냅니다. 잘라내서 구멍을 낸 다음에 다른 금속을 끼워 넣습니다. 이것도 일본 특유의 기법이지요.

  

11대째 내려오는 기술을 잇는다는 것

 

전통 공예사로서의 보람은 어떤 점일까요?

 
 이 일에 보람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단지 열심히 일을 할뿐입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달라요. 굳이 말하자면 저는 11대째인데, 죽은 다음에 저 세상으로 가면 역시 선대 분들한테는 칭찬받고 싶어요. 제 대에 망치면 큰일입니다. 앞서 가신 분들께 먹칠을 하게 되니까요. 이런 마음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이 다른 점일까요. 이 직업으로 돈을 벌 수 없으면 폐업할 수 밖에 없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역시 매일 일하면서 그것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어떻게든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가업을 지속해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가미카와 카즈오
 
 

에도 시대에 간행된 「인륜훈몽도휘」에서 발췌. 은기의 뿌리를 엿볼 수 있다.
(국립 국회 도서관 소장)
 

많은 기술로 제작된 은 주전자. 수중에 남아있는 유일한 선대의 작품.

도쿄 은기란

 

 
변색하는 은의 성질을 이용해 중세 유럽에서는 독살을 방지하기 위해 은 식기가 애용되었습니다. 이렇듯 은기는 사람의 생활과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며,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 현재의 긴자(은좌)에 있던 긴자야쿠쇼에서 은화가 주조되었고 경제 발전으로 번창한 겐로쿠 문화에서는 은이 장식품으로 인기를 끄는 등, 도쿄가 은기 산지의 중심으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전통 공예 일가로서

 

부친인 카즈오씨를 스승으로 3남1녀가 전통 공예에 종사하고 있다.
 
저희 집은 전통 공예 일가입니다. 일단 이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희 조상에 은기 제작으로 유명한 히라타 센노죠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부터 시작해서 제가 11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