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치요 기념관의 2층에서 1층을 내려 본 모습

이치요가 여동생인 쿠니에게 만들어 준 습자 책
이치요는 1872년에 사이와이바시(현 치요다구 우치사이와이쵸 히비야 일대)에서 히구치 노리요시와 타키의 둘째딸로 태어나 나츠라 이름지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속독과 기억력이 뛰어나 쿄쿠테이 바킨이 쓴 「난소사토미핫켄덴」을 3일 만에 읽었다는 일화, 오라버니들이 신문을 읽는 것을 흉내내는 것이 마치 어른이 신문을 읽는 듯하여 모두가 놀랄 정도였다는 일화가 여동생 쿠니의 글로 남아 있습니다.
1882년 5월에 세이카이학교를 월반으로 졸업하고 나이 많은 동급생에 섞여 성적은 5등, 이후 소학고등과 제4급에 진학하여 같은 해 12월에 수석으로 수료했지만, 여자에게 학문은 필요 없다는 모친의 의견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퇴학했습니다. 후에 부친의 권유로 1885년 시학교인 ‘하기노야’에 입학하여, 이를 계기로 이치요는 문학에 대한 열의와 재능에 눈을 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에노 오카치마치로 이사하고 입학한 이케노하타의 사립 세이카이학교 소학고등과 제4급의 졸업증서(1883년 12월), 수석으로 수료. (야마나시현립 문학관 소장)

「에이소」 1891년 12월부터 1892년 8월 집필, 전 15편. 본문 중 붉은 글씨의 평과 정정은 시학교 ‘하기노야’를 주최한 나카지마 우타코의 글씨.

1887년 2월 ‘하기노야’ 발회 기념 사진, 후방 왼쪽에서 세번째가 이치요, 둘째 줄 중앙이 나카지마 우타코. (야마나시현립 문학관 소장)

가운데가 이치요(14세), 동문인 높은 신분의 자녀들과 나들이옷조차 없는 자신과의 격차를 통감했지만, 이 최초의 발표회에서는 이치요의 시가 다른 동문을 제치고 최고점을 얻었습니다.

이치요가 이사한 당시인 1893년경의 시타야 류센지마치 다이온지 거리(현 차야마치 거리), 중앙의 흰색 표시 부근이 이치요 자택. 이 거리의 앞쪽에는 미시마 신사, 거리의 뒤쪽에는 신요시와라로 이어지는 도개교(성곽 등에 평소에는 매달아 두고 유사시에만 걸치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고증 우에시마 킨타로 / 시오타 료헤이 / 와다 요시에)

이치요 기념관의 2층에서 1층을 내려 본 모습

이치요가 이사한 당시인 1893년경의 시타야 류센지마치 다이온지 거리(현 차야마치 거리), 중앙의 흰색 표시 부근이 이치요 자택. 이 거리의 앞쪽에는 미시마 신사, 거리의 뒤쪽에는 신요시와라로 이어지는 도개교(성곽 등에 평소에는 매달아 두고 유사시에만 걸치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고증 우에시마 킨타로 / 시오타 료헤이 / 와다 요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