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케쿠라베」의 미도리와 신뇨, 신발끈을 고치는 신뇨와 붉은 유젠 염색 천을 들고 서 있는 미도리.

요가 소설의 스승이었던 나카라이 토스이에게 보낸 서한(부분), 문장의 구석구석에 이치요의 아렴풋한 연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일주일 후에 토스이와의 사제 관계에 종지부가 찍혔습니다. (1892년 6월)
이치요의 대표작인 「타케쿠라베」는 류센지마치의 다이온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참배객들로 붐비는 토리노 이치(11월의 제례 때 서는 장)의 생생한 묘사나, 주인공 미도리의 신뇨(류센지 주지의 아들)에 대한 아렴풋한 연정, 그리고 쇼타로의 눈길에 수치를 느끼며 자신이 성숙해 가는 모습을 자각하는 미도리의 심리 변화. 스승 나카라이 토스이와의 갑작스러운 사제 관계 해소에 대한 번민과 아렴풋한 연정, 그리고 소녀에서 어른으로의 성장을 자각하는 이치요의 심경을 표현한 듯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리 오가이는 자신이 주최하는 잡지 「메자마시구사」(1896년 4월)의 오가이, 코다 로한, 사이토 료쿠우가 담당한 「산닌죠고」에서 「타케쿠라베」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이치요를 높게 평가하던 오가이는 「산닌죠고」에 이치요를 더해서 「요츠타즈나」로 재편하고자 생각했지만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이치요의 결핵 증상은 이미 심각하여 오가이는 오랜 친구인 의사에게도 왕진을 부탁했지만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 해 11월 23일 이치요는 24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치요 자필 원고 「요루카에루카리」이치요의 서체은 나카지마 우타코와 그 문하인 카토 치카게에 의해 고안된 ‘치카게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타케쿠라베」의 미완성 원고. 이치요 기념관에는「타케쿠라베」(4)의 후반부터 (6)까지의 원고 대부분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원고용지는 이케노하타 모토쿠로몬쵸의 미카게도 제품으로 원고는 22장, 집필은 1895년 2월입니다.


「타케쿠라베」의 미도리와 신뇨, 신발끈을 고치는 신뇨와 붉은 유젠 염색 천을 들고 서 있는 미도리.
